린네 명명법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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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착한왕님의 글과 골수님의 글을 보면서 가졌던 의문을 파고들어 봅니다.

Q1. 린네의 이명법은 실제로 어떤 것이었는가? 종명을 여백에 기재했다는 의미는 무엇?

Q2. 수술과 암술의 수로부터 Class, Order 가 나왔다고 했는데 지금 사용되고 있는 Class 나 Order 의 내용과는 다른 것 같다. 린네의 Class 와 Order 는 어떤 것이었는지? (Croizat 의 논문을 보면 린네의 Class 는 현재의 Order, 린네의 Order 는 현재의 Family 에 해당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Q3. Croziat 의 1945 년 논문을 보면 린네나 Adanson 등은 린네의 분류체계와 같은 인공적인 체계를 임시방편 정도로 보았고, 더 많은 지식이 축적되면 자연적인 체계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 린네의 체계가 실제로는 어떤 것이었는가?

린네의 Systema Naturae 를 검색하려고 해보았으나 아마존에서 70달러 이상 하는 책들만 보이길래 일단 포기하고,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가서 린네의 저서를 찾아보았다. 1753 년에 발표된 Species Plantarum 의 스캔본과 텍스트가 같이 올라와 있었다. 첨부파일 1 은 Species Plantarum 의 본문 첫 페이지 스캔본이다. Systema Naturae 이후에 발표된 저서이므로 Systema Naturae 의 체계를 따랐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Classis I.
MONANDRIA
_MONOGYNIA_

본문은 MONANDRIA 라는 CLASS 로 시작한다. andro 가 남성(male) 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것을 안다면 MONANDRIA 가 수술이 하나 있는 식물을 뜻함을 알 수 있다. 그 밑에 있는 MONOGYNIA 는 암술이 하나 있는 식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즉, 식물을 분류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특성을 수술의 개수로 잡고, 이것을 Class 의 분류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 하위인 Order 의 분류기준은 암술의 개수다. 몇 페이지 넘겨 보면 MONANDRIA DIGYNIA, MONANDRIA TRIGYNIA 와 같은 분류가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다분히 편의적인 분류기준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식물의 전체적인 형태라든가, 꽃이 아닌 다른 부분의 특징은 모두 무시하고, 꽃에서도 수술과 암술의 개수를 기준으로 전체 식물들을 크게크게 분류했다는 것은 얼핏 생각해 보아도 자연적인 질서를 찾아냈다기 보다는 분류하기 편한 기준을 잡아서 만든 인공적인 체계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CANNA.

1. CANNA foliis ovatis utrinque acuminatis nervosis. (Indica.)
...상세 설명인 듯한 부분...
2. CANNA foliis lanceolatis petiolatis nervosis. (augustifol.)
...또 상세설명...
3. CANNA foliis lanceolatis petiolatis enervibus (Roy. glauca.)
... 상세설명 ...

본문에 처음 등장하는 실제 식물은 칸나 (Canna). Canna 는 속명이고, 그 밑에는 세 개의 종이 나열된다. 네다섯 단어가 해당 종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복명법 체계라고 생각되고, 괄호로 표시한 (실제 스캔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책의 여백에 해당하는 부분에 이탤릭체로 쓰여있다) 단어가 이명법에서의 "종명" 에 해당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Canna 라는 속에는 Canna indica, Canna angustifol, Canna glanca 세 종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키피디아의 http://en.wikipedia.org/wiki/Canna_(plant) 칸나 페이지에 있는 칸나 종 목록에서 Canna glauca 와 Canna indica 의 명명자가 L. (린네는 L. 이라고만 표기하는 듯..) 이라고 표기되어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Canna augustifol 은 없어졌거나, 다른 종으로 병합되었을 것 같다. http://en.wikipedia.org/wiki/Canna_species_synonyms 를 보면 Canna augustifolia 는 Canna glauca 의 synonym 으로 간주되고 있다.

Q1. 에 대한 답: 린네의 체계는 상대적으로 길어지는 복명법을 기본으로 하되, 편의상 간단하게 부를 수 있도록 종명을 한 단어로 여백에 기재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속명이 정해지면 그 안에 수십 개의 종들이 들어있지 않는 한, 그 특징을 길고 정확하게 기술하는 복명법보다는 가장 특징적인 것만 간단하게 한 단어로 표기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첨부파일 두 개를 살펴보면.. 실제로 종명이 "여백" 에 기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Q2. 에 대한 답: 린네의 Class, Order 는 수술/암술의 개수를 기준으로 하는, 매우 편의적인 개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짐작에 현재는 이런 식의 분류는 사용되지 않을 것 같다. 린네의 Class, Order 가 각각 현재의 Order, Family 에 해당한다고 하면, 그런 전환은 언제, 누구에 의해, 왜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 같다. (아마 Croizat 의 논문을 마저 읽어보면 나올 것 같긴 하다) 또한 현재의 Order, Family, 그리고 Class 에 대한 분류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문제도 역시 재미있을 듯.

Q3. 에 대한 답: 수술, 암술의 수에 기초한 분류가 편의적인 것이라면 이것은 자연의 질서(?)를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공적인 체계일 것이다.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린네나 Adanson 등이 생각했던, 언젠가는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분류의 자연적인 체계는 정말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 린네 등의 생각은 자연 체계에 분명한 질서가 있으며 조물주의 의도가 들어있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10만 년이 흘러도 그런 질서있는 자연 체계같은 건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쪽에 저녁 한 끼 정도 걸겠다.

JikhanJung

by honest | 2007/03/29 22:13 | 분류학 | 트랙백(1) | 덧글(1)

고생물학 메모 2 - 분류작업에 대하여

고생물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은 어떤 화석 표본을 어떤 분류군에 속하는 것으로 판정할것인가, 하는 "분류" (혹은 동정. 몇 년 전 고생물학회 발표장에서 어느 교수가 '동정' 은 일본식 한자어니 '감정' 이라고 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작업이다. 즉, 삼엽충 화석이 하나 나왔으면, 이게 어떤 종, 어떤 속에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다른 국제적인 층서 대비라든가, 퇴적학 또는 생태학적인 해석들을 포함하는 많은 작업들보다 선행해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 화석이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만 나와서는 분류작업을 하기가 힘들고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이 여럿 나와야 기존에 보고된 화석 사진들과 비교하여 어느 화석과 가장 비슷하게 생겼는지를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

이 작업은 내가 가지고 있는 화석 표본을 잘 관찰하고, 이것을 기존에 가까운 시대, 가까운 지역의 화석이 보고된 논문들의 사진을 살펴보면서 비슷해 보이는 화석 사진이 있는지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작업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앞서 메모 1 에서 이야기했듯이 일단 사진은 평면적이기 때문에 특정 화석의 전체적인 모습을 제한적으로밖에 못 보여준다는 단점이 있다. 또, 논문에 실린 화석의 보존 상태와 사진의 품질에도 꽤 큰 영향을 받는다. 사진 및 인쇄 기술이 지금보다 많이 뒤떨어진 시절에 발표된 논문의 사진들은 아무래도 보기 난감한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경우에 따라서는 리터칭을 심하게 해서 원래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인상을 보여주는 사진도 있기 때문에 종종 논문 저자의 정직성을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여기에 이야기한 것은 어느 정도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제약사항에 해당하는 것이고, 조금 더 심각한 문제로 들어가면, 애초에 분류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엄격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 따라 심하게 달라질 수도 있는 작업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삼엽충에 국한시켜 보자면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이나, 러시아, 중국 쪽의 학자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분화시킨 분류를 해놓은 경우가 많다. 신속 (new genus) 이나 신종 (new species) 를 보고하는 것이 일종의 학문적 명예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심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학문 자체의 한계도 있는데, 현생 생물학의 분류와 비교해 보자면 화석에서는 형태가 어느 정도 뚜렷하게 구별된다면 형태학적으로 종을 구분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교배해서 생식가능한 자손을 낳을 수 있는가 하는 생물학적 종의 기준은 화석에 적용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생물학적으로 의미있는 화석의 분류단위는 속 genus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분류가 보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1994 년에 발표된 콘라드 라반데이라 (Conrad Labandeira) 와 나이젤 휴즈 (Nigel Hughes) 의 논문이다. 미시시피 계곡의 캠브리아기 최상부 지층에서 발견되는 디켈로케팔루스 (Dikelocephalus) 라는 삼엽충 속 (genus) 은 19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보고되었고, 1930 년도에 울리히와 레서가 발표한 모노그라프에서 25 개의 신종을 기재하였다. 그 이후에 이들의 종 분류가 지나치게 세분되어있다는 비판은 지속적으로 있어왔으나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려고 달려든 사람은 없었다. 1994 년 논문에서 라반데이라와 휴즈는 울리히와 레서가 사용했던 화석 표본들을 전체적으로 다시 검토하여 25 개 종을 분류하는데 사용되었던 특징들 중 많은 특징들이 실제로는 연속적인 변이를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사람을 예로 들자면, 긴 얼굴을 가진 이문세와, 큰 얼굴을 가진 오달수, 작은 얼굴의 강동원 셋을 각각 다른 종으로 분류한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울리히와 레서가 사용했던 기준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것이었다면 오히려 괜찮겠으나, 실제로는 다른 삼엽충들 연구에 있어서도 많은 학자들에게 널리 사용되는 기준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종들이 지나치게 세분되어 있을지 조금은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울리히와 레서가 보고한 25 개의 디켈로케팔루스 종들을 하나의 종으로 합쳐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반데이라와 휴즈도 결론에서 군집과 층서, 화석산지의 위치 등을 고려한 좀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끝을 맺었다.

삼엽충이 아닌 다른 분류군으로 눈을 돌릴 경우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Paleontologia Electronica 의 아티클 찾아볼 것) 지나치게 세분화된 분류를 하는 사람들을 splitter 라고 하고, 그와 반대되는 경향을 가진 사람을 lumper 라고 부른다. 옛날 사람들, 그리고 러시아권이나 중국 쪽의 학자들은 splitter 경향이 강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풀어가는 제일 좋은 방법은 한 지점에서 충분한 양의 화석 표본을 확보하고, 그 표본 전체에서의 변이 정도를 관찰한 후, 다른 지점에서 역시 충분한 양의 화석 표본과 그 관찰된 변이 정도를 비교하고, 그 변이가 연속적인지, 혹은 뚜렷하게 그룹을 나눌 수 있는 정도의 변이인지를 계속 확인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화석으로 발견되는 것은 실제 살았던 생물 중 극히 일부분일 것이고, 그나마 많이 발견되면 다행이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에 손에 든 몇 개 되지 않는 표본들을 가지고 분류작업을 해야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얼마나 더 파야 충분한 표본을 확보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땅만 파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어디엔가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선을 그은 이후에 지나치게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분류를 세분화 하지는 않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상당 부분 연구자 개인에게 맡겨질 수밖에 없다.

by honest | 2007/03/29 01:31 | 고생물학일반 | 트랙백 | 덧글(0)

고생물학 메모 1 - 화석을 기술하는 도구에 대하여

고생물학이 독립적인 학문분과로 정착한 시기가 언제였는지는 문헌을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대략 19 세기 후반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고생물학 논문의 틀도 비슷한 시기에 잡혔을 거라고 보는데, 이 논문들의 1차적인 기능은 발견된 화석의 형태적으로 상세한 기재, 그리고 산출 위치의 보고 정도였을 것이다. 지층의 순서에 따른 화석의 산출 양상에 대한 관찰로부터 처음으로 체계적인 지질도를 그려내고 층서학이라는 학문을 성립시켰던 윌리엄 스미스로 인해 화석의 층서적인 의미가 부각되었을 것이다.

화석을 기재 혹은 기술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일단 글로 풀어서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 이 삼엽충은 머리가 뾰족하게 생겼으며 꼬리는 머리 길이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꼬리의 축은 뒤로 가면서 살짝 가늘어지고 등등.. 눈으로 보면 바로 보일 걸 글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설명해 놓은 글을 보는 사람이 글만으로 원래의 화석 모습을 재현해 내지 못하리라는 것이 너무도 자명하다.

다음은 특징을 잘 잡아내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있다. 화석이 불완전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충분한 관찰을 거친 후에 그 형태를 종합하여 온전한 형태의 그림으로 복원하는 것은 화석의 모양을 알아보기에 매우 좋은 방법이다. 물론, 그림이 완벽한 모사가 되기 힘들다는 것 외에도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화석들에 대한 필자의 선입견이 작용해 원래의 모습과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림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을만한 수단이 사진이다. 일단 사진은 보이는 그대로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불완전한 화석이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독자들에게 판단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왜곡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데, 먼저 사진을 찍는 실력이나 그 당시의 사진 기술이 따라주지 않을 경우 안 그래도 보던 사람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화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수가 있다. 또, 사진을 찍고 리터칭 과정을 거치거나, 출판할 때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사진을 잘라낼 경우 작업을 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원래 화석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화석 사진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존재한다. 인쇄, 또는 인쇄된 논문을 복사했을 경우 원본 사진에 비해 화질 열화가 일어나므로 원래의 화석 사진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최종 독자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그보다 화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사진의 경우 인쇄기술의 발달 정도가 꽤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최근까지도 고생물학 논문에서 사진은 별도의 처리를 하여 따로 인쇄되는 도판 (Plate) 으로 처리되었다. 본문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손으로 그린" 그림은 일반적인 인쇄방식으로 처리가 되지만, 사진을 이와 동일하게 처리할 경우는 아마 사진 전체가 시커멓게 나오곤 했을 것이다. 학부 때 (90년대 초반) 과 학회지나 동아리 회지 등을 아래아한글로 편집했던 경험에 미루어 보면 사진이 들어가는 페이지는 별도로 '망점 처리' (halftone dithering?) 를 해서 신문의 흑백면 사진처럼 그물코가 보이도록 인쇄를 했던 것 같다. 석사 논문을 인쇄하면서 얘기해 보니 도판으로 된 페이지를 따로 처리하려면 오프셋 인쇄를 해야 하고, 그렇게 처리하는 페이지당 15,000 원 정도의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고.. 여튼, 최근까지도 상황이 그러했으나 최근에는 인쇄기술이 좋아져서 사진을 본문에 같이 넣어서 일반적인 텍스트와 같이 처리를 해도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같이 석사논문을 썼던 후배는 도판도 오프셋 인쇄를 하지 않고 그냥 일반 인쇄로 했는데 오프셋 인쇄한 페이지는 종이가 좀 좋아보인다 뿐이지 사진 자체의 품질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오프셋 인쇄와 망점 처리의 차이? 관계?, 10여년 전 얘기하던 마스터 인쇄와 지금 일반 인쇄의 차이? 조사 필요)

20 세기 전반에 출판된 고생물학 논문들을 보면 특히 사진 및 인쇄 기술의 한계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족함들이 눈에 뜨인다. 류우지 엔도 (Ryuji Endo) 라는 일본인과 레서 (Resser) 라는 사람이 일제시대 당시 만주구의 화석에 대한 책을 저술했는데, 사진들이 따로 모여있는 도판 페이지에서 사진 하나하나가 지금과 비교했을 때 매우 작고, 품질도 많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1990 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고생물학 연구에는 흑백필름을 사용하여 찍은 사진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선배들의 연구과정 중에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사진을 찍고, 암실에서 현상하고 확대/인화 하는 시간이었다. 그 이후 디지털 카메라의 발전과 급속한 보급에 힘입어 지금은 고생물학 저널에서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받으니 그 불편하고 시간 많이 걸리는 과정을 반복할 필요는 없어졌다. 좋은 세상.

사진과 인쇄 기술이 발달하여 여러 가지가 편해졌다고 해도, 사진의 본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여전한데, 바로 화석은 입체적인데 비해 사진은 평면적이라는 것이다. 보통은 화석을 바닥에 놓고 위에서 밑으로 똑바로 내려보는 시점으로 화석 사진을 찍게 되는데, 이 경우 화석의 어느 부분이 얼마나 튀어나와 있는지, 옆에서 보았을 때 어느 정도나 휘어져 있는지 하는 정보들은 제대로 알 수 없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런 정보가 중요한 화석의 경우 측면/전면/후면 사진이나 약간 기울여 찍은 사진 등을 같이 싣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화석 사진을 볼 때 가장 중점을 두게 되는 사진은 위쪽에서 찍은 사진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찍은 사진이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놓치는 정보의 양 역시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화석을 기술하는 방법으로 1) 글로 설명하기 2) 그림으로 가능하면 세밀하게 그리기 3) (다양한 관점의) 사진으로 보여주기 와 같이 세 가지가 고생물학이 학문으로 자리잡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히 3D 모델링이 들어가야 한다 (고 생각한다). (3D 모델링에 대한 내용 조사) 학술논문이라고 하는 것이 원래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학자들에게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알려주기 위한 의사소통의 도구라고 한다면, 연구내용을 발표하려는 학자는 가능하면 내용을 상세히,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연구를 위해 필요한 것은 3D 스캐너와 컴퓨터. 자료 공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저널(들)에서 운영하는 3D 모델 repository?

by honest | 2007/03/29 01:31 | 고생물학일반 | 트랙백 | 덧글(3)

스샷 비교


평소에 플레이하던 설정. 초당 20 프레임 조금 넘게 나오지만 가끔 뚝뚝 끊어지기도 한다.



스샷 찍기 위해 그래픽 설정을 상향조정. 초당 3 프레임 정도 나온다. 당연히 플레이는 사실상 불가능.


이것이 어찌 같은 게임이란 말인가... orz 이런 상태로 플레이하면서 복원술사로 만렙을 찍다니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방금 두 후배에게 1000 골씩 보내주고 노트북에서 게임 삭제 완료. 봉인.

by honest | 2007/03/23 15:28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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